본격적인 여름, 예술이 견고한 갤러리의 문턱을 넘어 우리 일상의 구석구석으로 스며들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행보는 시애틀 미술관(SAM)의 파격적인 변신이다. SAM은 ‘서머 오브 플레이(Summer of Play)’라는 타이틀 아래 세 곳의 미술관 공간을 활용해 도시에 활기찬 에너지를 불어넣는 중이다.
이번 기획의 백미는 단연 올림픽 조각 공원에 들어선 9홀 규모의 미니 골프 코스다. 아티스트들의 손길을 거쳐 탄생한 이 코스는 6월 13일 프리뷰 성격의 ‘티업 포 샘(Tee Up for SAM)’ 행사를 통해 화려하게 막을 올린다. 라이브 음악과 푸드 스테이션, 로컬 맥주와 와인 테이스팅이 곁들여진 이 축제를 시작으로, 미니 골프 코스는 17일부터 9월 7일까지 매주 수요일에서 일요일 대중에게 개방된다. 스콧 스툴렌 SAM 관장의 말처럼, 지금 미술관은 단순히 작품을 관람하는 곳이 아니라 예술을 매개로 사람들이 연결되고 환희를 나누는 커뮤니티 중심의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여기에 7월 9일부터 한 달간 이어지는 ‘서머 앳 샘(Summer at SAM)’ 무료 프로그램은 라이브 음악, 요가, 드래그 빙고 등 다채로운 이벤트로 여름밤의 조각 공원을 채울 예정이다.
흥미로운 점은 SAM의 외도가 골프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거다. 7월 1일부터는 다운타운 포럼에서 시애틀 매리너스 주전 선수들의 스파이크화를 전시하는 ‘프레시 오프 더 필드(Fresh Off the Field)’가 무료로 열리며, 7월 31일 티모바일 파크에서는 한정판 티셔츠를 제공하는 패키지와 함께 ‘SAM 나이트’가 이어진다. 다가오는 월드컵 열기에 발맞춘 굿즈 컬렉션도 눈길을 끈다. 개최 도시 포스터를 디자인한 쇼고 오타의 저지와 현재 SAM에 전시된 ‘리틀 클라우드 스카이’의 주인공 프렌즈위드유(FriendsWithYou)가 작업한 한정판 축구공이 6월 10일부터 발매된다. 심지어 조각 공원 자체도 루멘 필드와 시애틀 센터를 잇는 4.25마일의 도보 코스 ‘유니티 루프’의 일부가 되어, 월드컵 기간 동안 110여 개의 벽화 및 공공미술과 유기적으로 호흡하게 된다.
이처럼 거대한 미술관이 도심을 거대한 예술적 놀이터로 만들고 있다면, 지역 커뮤니티 깊숙한 곳에서는 학교가 그 바통을 이어받아 꽤 근사한 화학 작용을 만들어내는 중이다. 예술을 향유하는 데 굳이 거창한 화이트 큐브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듯 말이다. 캘리포니아 리게티 고등학교(Righetti High School)가 최근 개최한 제22회 연례 아트 쇼와 초크 페스티벌이 좋은 예다. 평범했던 학교 체육관은 이틀 동안 무려 2천 점이 넘는 학생들의 오리지널 작품들로 빈틈없이 채워지며 웬만한 프로 갤러리 부럽지 않은 장관을 연출했다.
산 호아킨 밸리 고등학교(SJVHS)의 행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캠퍼스 밖으로 향했다. 학년 말이 훌쩍 다가온 5월 27일, 팔리에(Parlier) 동네의 스타벅스 매장이 하룻밤 사이에 ‘비주얼스(Visuals)’라는 타이틀의 팝업 갤러리로 변모한 것이다. 수채화부터 스케치, 에어로졸 페인트에 이르기까지 10여 명의 학생들이 지난 두 학기 동안 치열하게 고민해 빚어낸 40여 점의 다채로운 작품이 커피 향과 함께 내걸렸다.
미술 교사 카를로스 아파리시오의 작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이 기획은 프레즈노의 ‘아트 홉(Art Hop)’ 같은 대형 전시가 주는 영감과 기회를 이 작은 마을 학생들에게도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는 바람에서 싹텄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흔쾌히 공간을 내어준 매장 측과 지역 주민들의 든든한 지지가 맞물려, 일상적인 소비의 공간이 훌륭한 예술적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증명해 냈다. 아파리시오 교사는 “미술을 전혀 해본 적 없는 아이들이 쏟아부은 열정과, 스스로 자신감을 채워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라며 감회를 전했다.
실제로 전시장에 걸린 작품의 기교보다 흥미로운 건 이 과정을 통과하며 아이들이 겪은 내밀한 변화다. 미술에 별다른 소질이 없다고 믿었던 학생들은 스스로도 몰랐던 잠재력을 마주했다. 전시에 참여한 미셸 루이즈와 애슐리 부스토스는 처음엔 모든 게 막막하고 두려웠지만, 결국 필요한 건 그림 실력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무언가를 해낼 시간과 인내심을 허락하는 일이었다고 고백했다. 장차 미술 교사를 꿈꾸는 카일리 피터슨에게도 이번 전시는 대중 앞에서 자신의 결과물을 내보여야 하는 막연한 불안감을 확신과 설렘으로 뒤바꿔준 결정적인 모멘텀이 되었다.
어쩌면 예술이 우리 삶에 작동하는 방식은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미니 골프채를 쥔 채 조각 공원의 예술품 사이를 걷든, 북적이는 고등학교 체육관에서 초크 아트를 감상하든, 혹은 동네 커피숍에서 십 대 학생의 삐뚤빼뚤한 스케치를 보며 미소 짓든 본질은 매한가지다. 예술이 캔버스라는 좁은 틀을 벗어나 일상의 공간으로 불쑥 틈입할 때, 그것은 우리 안의 숨겨진 가능성을 끌어내고 서로를 다정하게 엮어내는 가장 유쾌하고 강력한 매개체가 된다. 이 여름, 우리 동네 어딘가에 숨겨진 예술적 징후들을 좇아 가볍게 산책에 나서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