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시각 예술의 두 얼굴: 알프스의 천재 소년과 루브르의 유령

프랑스 문화계가 두 가지 상반된 시각적 서사로 주목받고 있다. 한쪽에서는 알프스의 대자연 속에서 생명의 진실을 포착하려는 10대 소년의 순수한 열정이, 다른 한쪽에서는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어둠 속에서 과거의 망령을 되살리려는 미디어 업계의 야심 찬 시도가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자연의 경이로움을 담아내는 다큐멘터리 사진과 고전 미스터리를 재해석한 드라마라는 전혀 다른 장르가 동시대에 공존하며 프랑스 시각 예술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14세의 야생 사진 신동, 렌즈에 윤리를 담다

스마트폰 화면을 넘기기보다 산에 오르기를 좋아하는 14세 소년 뤼뱅 고댕(Lubin Godin)은 최근 ‘야생 사진계의 신동’으로 불리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프랑스 오트사부아(Haute-Savoie) 출신의 이 중학생은 런던 자연사 박물관이 주관하는 ‘올해의 야생동물 사진가상’과 ‘유럽 올해의 야생동물 사진가상(11~14세 부문)’을 석권하며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두 사진 공모전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는 콜 드 라 콜롬비에르(Col de la Colombière) 고개에서 촬영한 야생 염소(아이벡스) 사진이다. 어머니와 함께 새벽 5시에 기상해 산에 오른 그는 짙은 안개 속에서 바위 위에 휴식을 취하는 염소 세 마리를 발견했다. 해가 떠오르며 안개가 걷히는 순간, 황금빛 태양 광선이 만들어낸 주황색 그림자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고 뤼뱅은 이 마법 같은 장면을 한 시간 동안 렌즈에 담았다. 런던 자연사 박물관의 심사위원들을 매료시킨 이 사진은 소년에게 잊지 못할 영광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뤼뱅이 진정으로 강조하는 것은 시각적 아름다움이 아닌 ‘촬영 윤리’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아니라 그 과정에 있는 윤리”라고 단호히 말한다. 일부 사진가들이 좋은 컷을 얻기 위해 당근으로 야생 동물을 유인하는 등의 행태를 강하게 비판하며, 실제로 인간이 준 먹이를 먹은 마모트가 2주 뒤 폐사한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다. 동물의 자연스러운 행동과 환경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것이 진정한 사진이라고 믿는 그는, 아직 성공하지 못한 검은뇌조(테트라스 리르)의 근접 촬영을 위해 오늘도 산에서의 비박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고전의 부활인가 무리수인가: 2025년판 ‘벨페고르’

알프스의 소년이 자연의 있는 그대로를 추구한다면, 파리의 방송가는 1960년대 전설적인 드라마의 환영을 2025년의 감각으로 재조립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M6와 HBO Max가 손잡고 제작한 새 시리즈 ‘벨페고르(Belphégor)’는 아서 베르네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12월 11일 HBO Max를 통해 공개된다. 이는 줄리에트 그레코가 주연을 맡아 1965년 프랑스 전역을 공포에 떨게 했던 원작의 명성에 도전하는 과감한 시도다.

사실 ‘벨페고르’의 리메이크는 프랑스 제작자들에게 매력적이면서도 위험한 도박이다. 2001년 소피 마르소와 미셸 세로 같은 당대 최고의 배우들을 기용해 제작된 영화판조차 비평과 흥행에서 참혹한 실패를 맛본 바 있다. 이번 드라마의 제작진은 이러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단순한 리메이크’가 아닌 ‘현대적 재해석’을 선택했다. 공동 크리에이터인 닐스 앙투안 삼부크는 “과거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루브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현대적인 미스터리 스릴러를 만들고 싶었다”며, 주인공이 기억을 잃고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지는 심리적 공포를 강조했다고 밝혔다. 제작사 파테(Pathé)가 처음으로 선보이는 TV 시리즈라는 점에서도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현대적 문법으로 다시 쓴 미스터리, 그 평가는?

뚜껑을 연 2025년판 ‘벨페고르’는 일단 우려했던 ‘대재앙’은 피했다는 평가다. 제작진의 의도대로 고전의 유산에 얽매이지 않고 현대적인 스릴러 문법을 적용한 점은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구세대에겐 추억을, 신세대에겐 루브르를 배경으로 한 세련된 장르물로서의 매력을 어필하겠다는 전략이 어느 정도 유효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아쉬움도 남는다. 총 4부작이라는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서사의 전개가 다소 더디다는 지적이다. 특히 극의 핵심 갈등인 고미술품 불법 밀매와 관련된 악당들의 동기가 3화가 되어서야 드러나는 점은 몰입도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또한, 제목이 무색하게도 정작 유령 ‘벨페고르’가 극 중반부까지 단순한 소품처럼 취급되다가 결말에 이르러서야 중심에 서는 구성은 원작 팬들에게 실망감을 줄 수 있는 부분이다.

알프스에서 자연의 순리를 쫓는 소년 사진가의 윤리적 태도와, 파리 루브르의 지하에서 고전의 가치를 현대적 상업성으로 치환하려는 미디어의 시도. 이 두 이야기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프랑스 사회의 현재적 고민을 투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