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의 옷장과 8살의 은반, 세계를 홀린 두 청춘의 평행이론

12살 소녀의 크리스마스 아침은 여느 때와 달랐다. 머리맡에는 산타클로스가 두고 간 선물 꾸러미가 놓여 있었고, 그 안에는 마이크와 노트북 등 녹음 장비가 가득했다. 본래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꿨으나 “그림에 재능이 없다”는 주변의 반응과 스스로의 냉철한 판단 속에 좌절하던 소녀에게 이 선물은 운명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의 동영상 플랫폼 ‘니코니코 동화’에서 활동하는 아마추어 가수, 즉 ‘우타이테’들의 영상을 보며 새로운 꿈을 키우게 된 것이다. 현재 일본을 넘어 전 세계를 열광시키고 있는 ‘얼굴 없는 J팝 스타’ 아도(Ado)의 음악 인생은 그렇게 시작됐다.

아도는 사용법조차 몰랐던 장비들을 독학으로 익히며 자신의 옷장을 방음재로 덧댄 1인 녹음실로 개조했다. 중학생이 된 14살 무렵 처음으로 업로드한 노래가 호응을 얻자, 그의 열정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후 2020년, 보컬로이드 프로듀서가 만든 오리지널 곡 ‘시끄러워(Usseewa)’로 메이저 데뷔를 알린 아도는 우타이테 출신 최초로 유튜브 조회수 1억 회를 돌파하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특히 극장판 애니메이션 ‘원피스 필름 레드’의 주제가를 가창하며 J팝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했고, 현재 구독자 641만 명을 보유한 거물급 아티스트로 성장했다.

한국을 사랑한 J팝 스타, 그리고 K팝 스타가 된 피겨 요정

아도의 영향력은 국경을 넘어 한국에서도 뜨겁게 타올랐다. 최근 진행된 그의 첫 내한 공연은 예매 시작 2분 만에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평소 에스파, 아이브, 르세라핌 등 K팝 아티스트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드러내 온 아도는 “한국 팬들의 열광적인 반응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서툰 한국어 실력에도 불구하고 팬들과의 소통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흥미로운 점은 아도가 동경하는 K팝 신(Scene)에도 그와 비슷하게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목표를 향해 달렸던 인물이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그룹 엔하이픈(ENHYPEN)의 멤버 성훈이다. 아도가 12살에 옷장 속에서 꿈을 키웠다면, 성훈은 8살 때부터 차가운 은반 위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피겨 스케이팅 선수 출신인 그는 최근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의 성화 봉송 주자로 발탁되며 자신의 뿌리였던 스포츠계와 다시 조우했다.

은반 위에서 꾸던 올림픽의 꿈, 마이크를 잡고 다시 피어나다

성훈에게 올림픽은 단순한 스포츠 행사가 아닌 인생의 절반을 바친 목표였다. 밴쿠버 올림픽에서 활약하던 김연아 선수의 연기를 보고 피겨에 입문한 그는 아이스하키에서 피겨로 종목을 전향할 만큼 예술적이고 섬세한 피겨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비록 선수가 아닌 K팝 아티스트로서 올림픽 현장을 찾게 되었지만, 성훈은 “선수가 아니면 올림픽에 갈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앰버서더로서 참여하게 되어 영광스럽다”는 소감을 전했다.

그는 만약 지금 다시 피겨 프로그램을 짠다면 배경음악으로 어떤 곡을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에 엔하이픈의 ‘Chaconne(샤콘)’을 꼽았다. 대부분의 그룹 곡들이 빠른 템포와 비트를 가진 것과 달리, 이 곡이 가진 어둡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마치 ‘블랙 스완’을 연상시키며 피겨 스케이팅의 예술적 몰입감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각자의 무대에서 쓰는 새로운 역사

두 아티스트의 행보는 이제 개인의 성공을 넘어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아도는 여성 솔로 아티스트 최초로 8만 석 규모의 일본 도쿄 국립경기장 단독 공연을 앞두고 있으며,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미국 투어까지 계획하며 보컬로이드와 우타이테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성훈 역시 올림픽 앰버서더이자 글로벌 아이돌로서 전 세계 팬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옷장 속의 소녀와 은반 위의 소년은 이제 각자의 방식으로 세계라는 거대한 무대를 누비며, 국경과 장르를 초월한 울림을 전하고 있다.